브리저튼 시리즈는 줄리아 퀸이 쓴 로맨스 소설 시리즈입니다. 배경은 19세기 초 영국 리젠시 시대입니다. 런던 사교계를 무대로 합니다. 중심에는 브리저튼 자작가의 8남매가 있습니다.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이어지는 설정이라, 가족 소개만으로도 시리즈 분위기가 잡힙니다. 저는 이 설정이 참 편하다고 느꼈습니다. 인물이 많아도 머릿속에서 정리가 됩니다.
가족 이야기는 따뜻하지만 시작은 조금 쓰라립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장남 앤소니가 어린 나이에 집안을 책임집니다. 그래서 이 집은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에는 책임감과 압박이 늘 붙어 있습니다. 어머니 바이올렛은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웠고, 자식들이 사랑이 있는 결혼을 하길 바랍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그 열정이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이 밀당 같은 분위기가 시리즈 전체에 계속 깔립니다. 가족끼리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많고, 그게 또 재미 포인트입니다.
이 시리즈를 특별하게 만드는 장치는 레이디 휘슬다운의 가십 칼럼입니다. 매 장이 넘어갈 때마다 사교계 소식이 짧게 끼어듭니다. 말이 곱지 않습니다. 실명도 막 씁니다. 옷 못 입은 사람은 아주 아프게 까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중독됩니다. 인물들이 칼럼에 휘둘리고, 소문이 관계를 흔들고, 그 와중에 사랑 이야기가 커집니다. 저는 이 칼럼이 시리즈의 리듬을 살린다고 봤습니다. 로맨스만 계속 나오면 늘어질 수 있는데, 중간중간 가십이 분위기를 바꿔줍니다.
첫 권 공작의 여인은 다프네와 사이먼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다프네는 성격이 좋지만 남자들이 연애 대상으로 잘 안 봅니다. 사이먼은 잘나가고 차갑고, 결혼 생각이 없습니다. 둘은 각자 사정이 있어서 계약처럼 보이는 관계를 시작합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척 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로맨스에서 이런 계약은 오래 못 갑니다. 결국 마음이 따라오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저는 이 1권이 입문용으로 딱이라고 느꼈습니다. 전형적인 맛이 있고, 문장도 술술 넘어갑니다.
둘째 권은 앤소니 이야기입니다. 겉으로는 난봉꾼처럼 보이지만, 사실 집안을 지키느라 늘 긴장한 사람입니다. 결혼을 ‘의무’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을 사람을 고르겠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잠그는 사람 앞에 케이트가 나타납니다. 케이트는 동생을 지키려고 앤소니를 정면으로 막습니다. 말싸움도 세고 자존심도 셉니다. 여기서 재미가 터집니다. 서로 싫어하는데 시선이 자꾸 가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이 권이 관계의 긴장감이 가장 잘 살아 있다고 봤습니다.
셋째 권 신사와 유리구두는 신데렐라 설정을 비틀어 놓습니다. 베네딕트가 가면무도회에서 한 여자를 보고 반해버립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라지고, 단서만 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른 모습의 그녀를 다시 만납니다. 여기서 핵심은 신분 차이와 현실입니다. 동화처럼만 가지 않습니다. 저는 이 권이 달달한데도 씁쓸한 맛이 있어서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시리즈 중 재탕하기 좋은 권을 꼽으라면 저는 이쪽에 손이 갑니다.
콜린과 페넬로페 이야기는 분위기가 또 다릅니다. 한 번에 불붙는 사랑이 아니라, 오래 쌓인 감정이 어느 순간 방향을 바꾸는 느낌입니다. 페넬로페는 사교계에서 늘 ‘벽 쪽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옷도 마음대로 못 입고, 주변 시선도 차갑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버티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콜린은 늘 밝아 보이지만 속이 비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 커플이 시리즈에서 가장 사람 냄새가 난다고 느꼈습니다. 화려한 로맨스가 아니라, “이제야 알아보네” 같은 감정이 있습니다.
뒤쪽 권들로 가면 분위기가 더 진해집니다. 엘로이즈는 결혼에 관심이 적어 보이는데, 어느 순간 편지로 이어진 관계에 뛰어듭니다. 프란체스카 이야기는 더 어른스럽고, 더 어둡고, 더 뜨겁습니다. 막내 히아신스는 톡톡 튀는 느낌이 강합니다. 권마다 결이 달라서, 취향 따라 좋아하는 권이 갈립니다. 저는 이게 시리즈의 장점이라고 봅니다. 같은 세계관인데도 매번 로맨스 맛이 조금씩 다릅니다.
정리하면 브리저튼은 ‘가족 로맨스’입니다. 한 권마다 주인공이 바뀌고, 이전 주인공들이 조연으로 계속 등장합니다. 그래서 시리즈를 쭉 읽으면 인물들이 진짜 친척처럼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레이디 휘슬다운이 계속 소문을 뿌리며 판을 흔듭니다. 저는 이 조합이 강하다고 느꼈습니다. 가볍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다음 권을 자동으로 켜게 되는 타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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