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기를 남기기 시작할 때는 되게 신나는데, 나중에는 혼자만의 숙제가 된다.
첫 번째 이유는, 여행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이다.
여행을 가기 전, 해당 여행 기간 동안 쓸 일기장을 만든다. 여행 전부터 일정과 기분을 꼼꼼하게 기록하는데 여행 후반으로 갈 수록 소홀하게 된다. 연간 다이어리에 1~2월 일기만 세세하게 작성되어 있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이유는, 여행 시점에서 멀어질 수록 기억도 사라져서이다.
별 내용도 아닌 것들을 단숨에 쓰면 될 것 같은데, 마음 속에, 머리 속에 있는 느낌들이 표현되지 않아 답답하고,
쓰다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나 싶어 이것저것 검색하다보면 시간이 늘어진다.
일상에 시간을 빼앗기다보면 한 달에 한 두번, 여행의 하루 이틀을 겨우 기록한다.
여행 마지막 며칠의 기록은 거의 여행 1년 후에 쓰게되는데 첫 번째 이유로 기록이 없고 두 번째 이유로 기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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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사진의 순서와 구글 timeline을 보고 아 이 날 이거했구나, 기억해내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날, 무엇을 했지, 하고 구글 timeline에 들어갔더니,
아아 이 날 (!!!) 이날은, 내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다시 가고 싶다고 생각할 때 떠올리는 장면의 그 날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5일 있었고, 스테이크, 탱고, 스카이다이빙 등 재밌고 즐거운 경험이 많았지만,
별일 없이 돌아다니며 책을 보고 날씨를 즐겼던 이 날에 대한 기억으로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다시 가고 싶어서 오늘도 스카이스캐너를 들어갔다.
Serendipity Coffee & Wine Bar
Bonpland 1968, C1414 CMZ, Buenos Aires, Argentina
이 날은 주요 관광 일정이였던 라보카보다 아침에 방문하였던 카페에서의 여유와, 다정함과 푸짐함이 기억에 남는다.
Nola
Gorriti 4389, Buenos Aires, Argentina
라보카를 같이 가기로한 일행과 만나러 가는 길에 들렀던 펍에서의 가벼운 대화와 햇살에 대한 기억도 짧지만 진하게 남아있다.
아니, 이 날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의 기억은, 기억이라기보다는 느낌이다.
최근에 누군가 물었다. 행복하다고 생각한적이 있냐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간지러워.
나는 하루에 한 두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였더니, 언제, 무엇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그냥 그 순간에 느껴지는 느낌이여서, 어떤 이유 때문에 생각되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어느 날은 누워있다가 문득, 어느 날은 걷다가 문득,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그냥 느껴지더라고 했다.
그런데 이 날을 돌이켜보면, 그런 행복의 느낌이 농축된 채 오전 내내, 오후 반나절 둥둥 나와 함께한 날......이라고나 할까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후 3시, 시내 스타벅스에서 라보카를 같이 가기로한 일행과 만났다.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니 여자 이름과 함께 하트가 있었는데, 내내 소개팅을 해달라고 졸랐다.
여자친구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조카 이름이라나 뭐라나, 조카가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조카바보라고-_-;
나중에 그 일행과 그 전 일정에서 만났던 다른 일행의 말을 들어보니 그때는 여자친구라고 했다고 한다...ㅋ
아무튼 덕분에 악명높은 라보카를 관광할 수 있었다.
라보카는 색색의 건물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찍기 좋고,
카페마다 탱고 공연을 하고 있어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며 탱고를 즐기기에 좋지만,
대놓고 관광 지역이고, 소매치기가 많기로 유명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물총에 새똥을 포함한 이물질을 넣고 행인에게 뿌린 후
다른 소매치기 일행이 닦아주겠다며 물티슈를 들고 접근하여 정신을 빼놓는 틈에 물건을 훔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었다.
물건을 도난 당하는 것도 기분 나쁘겠지만, 이물질 공격을 당하는 것은 끔찍하겠다 싶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겪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위험지역인 것 같았다.
평일 낮 시간. 사람이 한적해서 생각보다 무서운 느낌은 아니였는데도
길을 찾기위해 핸드폰을 꺼내들면, 지나가는 사람마다 가방에 넣는 것이 좋을거라고 경고했다.
La Parolaccia Trattoria
저녁에는 시내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테이블 세팅과 조명,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 웨이터의 의상 등이 고급진 분위기를 만드는 곳이였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와인이 싼 편이여서 가성비가 좋게 느껴졌다.
사진은 제대로 안 나왔지만, 음식도 맛있었다.
다른 날도 그랬지만, 이 날도 생각보다 와인을 많이 마시고 숙소에 계획보다 늦게 돌아왔다.
아침 비행기로 리마를 가야하기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마지막 밤이였다.
시간 여유가 꽤 있었는데 잠들었다가는 제 시간에 못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 급히 짐을 싸서 공항으로 가는 바람에
도시와 제대로 작별 인사를 못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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