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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날

[가평] 호명산 잣나무 숲속 캠핑장

처음 갔을 때는 용산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상봉역을 간 후에 경춘선을 갈아타 상천역을 갔다.

2주만에 다시 갈 때는 대기를 걸어둔 itx 청춘열차가 예약되어 청평역까지 기차를 타고 경춘선을 갈아타 한 정거장 더 하여 상천역을 갔다. (중간에 교통카드를 찍는 곳이 없어서 상천역을 도착하여 역무원 분에게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따로 결제해주셨다.)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빨리간 느낌이었고, 기차 여행만의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ㅋ

도시락을 먹을 수 있어서 그런건 아니고~

 

처음 갔을 때는 오후 반차를 내고 점심 시간에 출발하였기 때문에 특히 더 배가 고픈 상태였다. 용산역에서 도시락을 사서 출발했지만, 지하철과 같은 경의중앙선과 경춘선에서 먹을 수가 없어서 환승역인 상봉역 플랫폼에서 급히 먹었다. 내가 고른 누드 김밥은 밥이 진 와중에 차게 식어서 맛이 없었다. 일행이 고른 도시락은 맛은 있(었다고 하)는데. 급히 드시느라 체했다고. 쯧쯧

두 번째 갈때는 기차를 타니까 맛이 확인된 도시락을 사서 확보된 자리에서 천천히 즐겁게 먹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날도 역시 배가 고팠고, 기차 여행에 신이났고, 도시락이 맛있어서 엄청 후딱 먹었다. 다행히 체하지는 않음

 

김영하님의 <여행의 이유>를 회사에서 빌려 챙겨갔는데 여행용 책으로 딱 좋았다. 책 자체도 가볍고, 여행을 하고 있는 내 상황이랑 딱 맞아 떨어지고. 

기차에서 읽은 부분 중 공감이 되어 찍어놓은 파트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겼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동방견문록을 남겼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귀환한다는 애초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그 긴 여정을 통해 그가 진짜로 얻게 된 것은 신으로 표상되는 세계는 인간의 안위 따위는 무심하다는 것, 제아무리 영우이라 하더라도 한낱 인간에 불과하며, 인간의 삶은 매우 연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것, 환각과 미망으로 얻은 쾌락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것 등을 깨닷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는 처음 길을 떠날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고향인 이타케에 도착한다."

 

여기서 나에게 다가온 포인트는, 

1) 내가 얻는 것은 원래 얻고자 했던거랑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일이 잘못되거나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다는 것.

2) 내가 여행을 하거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예상치도 못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스릴이 되고, 기대감이 설레임에 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3) 번외로, 오디세우스가 깨달은 것 중에 어쩌면 굉장히 시니컬한 '신으로 표상되는 세계는 인간의 안위 따위는 무심하다는 것' 부분인데...오히려 되게 안심이 되었달까. 아, 무심하시구나. 나는 그냥 살면되는거구나. 

 

상천역을 도착해서 20분 정도 걸어간다. 

처음 같이 간 일행이 처음 동행한 일행에게 여기서부터 1시간 걸어야한다고 농담 쳤는데. 아무도 호곡!하지 않고, 아 1시간 가야하는구나. 그렇구나.하며 다부진 모습으로 출발해서 농담이라고 말도 못해주고 진지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20분 후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짐을 잔뜩 지고 갔기 때문에 20분거리도 결코 짧지는 않았다.

체크인-은 아니고 뭐라해야하지. 아무튼 우리가 예약한 데크는 2시부터 사용할 수 있는데,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올라가는 길에 금토 백패킹을 마치고 내려가는 분들을 많이 마주쳤는데, 캠핑장 관리하는 분들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고 계셨다.

 

관리사무소에 가방을 맡기고 트래킹을 다녀왔다...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냥 산중턱 정도까지 산책을 했다.

일행 분이 영 힘들다고;;; ㅋㅋ

 

금방 계곡이 나타나는데 바위밑으로 고드름이 얼어 있었다. 똑 떼어서 자연친화적인 갬성으로 빨아 먹었다.

 

트레킹을 다녀오고도 시간이 남았다. 

하루 전날 이마트에서 장을 보긴했지만,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고, 트레킹 도중에 귤을 드시는 분들을 보고 귤이 먹고 싶어지기도 했고, 화로에 고구마를 구워먹는 것은 어떻냐는 의견들이 있어서 장을 추가적으로 보기로 하였다.

총 네 명인데, 다 갈필요는 없으니 가위바위보를 해서 두 명만.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가위바위보를 할때마다 잘 걸리는 편인데. 휴. 이겼다.

둘을 보내고, 남은 일행이랑 수다도 떨고, 책도 보고, 잣나무숲 감상도 하였다. 

 

실컷 놀다보니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고, 편도 20분 왕복 40분 거리에 짐까지 들고 오려면 힘들기도하겠다, 혹시나 괜히 볼멘 상태면 나도 눈치보이니까 ㅋ-ㅋ 시간이 되었을 때 관리사무소에 맡겨둔 짐들을 미리 데크에 옮겨두었다. 

 

 

일행에 와서 같이 텐트를 치고, 불도 피웠다.

캠핑은 정말, 하나도 관심이 없다가 작년 11월에 말에 처음간 후 벌써 5번인데 (닷돈재, 멍우리협곡, 호명산 2번, 통영 매물도)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차가운 공기 중에 앉아 화로를 쬐는 시간이다.

불멍이라는 말도 있듯이 불 앞에 앉으면 그 온기도 온기지만 불이 움직이는 모습이 매력적이라 계속 멍~하게 쳐다보게 된다. 

 

대학교때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것 대부분 기억이 안나지만. (배우지도 공부하지도 않아서인건 아니겠지)

소설 모비딕을 배웠을 때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다.

...아 그런데 잘 기억이 안나...ㅋ 

아마 굉장히 초반에 주인공이 바다에 나가기 전에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부분인데.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로, 사람들은 원래 물을 보거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의 안정을 느낀다고...하셨...나...?

그래서 고급 레스토랑을 가면 물과 관련한 인테리어가 많다고..... 

이후 레스토랑에서 까만색 빨래판처럼 생긴 구조물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는 것이 장식되어있거나, 포석정처럼 돌로된 도랑에 물이 흐르는 것이 별다른 용도없이 설치되어 있으면 오호 저거구나,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 캠핑을 하며 물 뿐만 아니라 불도 인간을 끌어당기는 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ㅋ)

 

불을 피우고 슬슬 순서대로 먹을 준비를 한다.

 

개인적으로 이번 캠핑의 잇템은 나무젓가락이였다. 

우리에게 캠핑을 셀링한 일행이 '나뭇가지를 깎아 젓가락을 만드는' 얘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깜찍할 일인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코팅해서 두고두고 쓰고 싶었다.

화로 위에 그릴을 올리고 고기를 얹어 소금을 뿌린다. 가장 기대감이 넘치는 순간이다.

 

귤과 브리치즈도 구워먹었다. 

송년회 때 브리치즈 오븐구이를 먹은 후 나온 아이디어였다.

캠핑장 관리자이신 야만인님이 사진을 찍어가서 호명산 인스타 계정에도도 올라왔다.

불이 한숨 죽었을 때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숯에 구워먹고, 

캠핑장을 관리하시는 분(=유투버 야만인)께서 밤을 주셔서 밤도 타닥타닥 구워 먹었다!

구워먹는 족족 맛있어서 뭐든지 다 구워버리고 싶은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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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밝았다.

 

또 다시 불을 피운다.

라면을 끓여먹었다. 얇은 면 라면을 골라 먹으면 되게 맛을 아는 느낌이다.

 

그리고 또 모닝 잇템이 등장하는데!!!

무려 퐈리에서 공수해온 산타와 눈사람 모양의 핫초코다!!!

  

코코넛가루로 눈을 표현한 것도 너무 귀엽고 산타 온천이라며 우유에 녹여 먹는데 잔인하지만 따듯한 느낌...(뭘까...)

맛도 완전 맛있음

 

 

잣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살이 너무 예쁘다.

 

희한하게 겨울 캠핑장에서 마신 술은 취하지도 않고 숙취도 없다. 

잣나무숲처럼 상쾌하게 아침을 먹고 다시 패킹을 하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꼭 '으'하고 있는 얼굴 같아서 귀엽고 웃겨서 찍은 설치물...ㅎㅎ

 

 

그리고 오는 길에 계속 읽은 김영하님의 '여행의 이유'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1) 낯선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 2) 그런데 받아들여진다, 3) 다행이다. 크게 안도한다, 4) 그러나 곧 또 다른 어디론가 떠난다"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 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더 명료해진다."

 

여행을 떠날 때의 불안감을 어느 순간 헤치웠을 때의 안도감과 쾌감 (아쉬움도 있지만)을 표현해준 것 같은 작가의 경험적 예시였다.

가슴 벅찰만큼 뭔가 느낀건 확실한데 그게 뭔지 도무지 설명이 안될 때의 답답함이 무지와 무능 때문이 아니라 막 느낌 감정과 상황의 모호함 때문일 뿐이구나. 생각하게끔 해준 문구.가 또 나를 위로한다.

 

이렇게 써놓고보니 나는 꽤 많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구나, 싶지만 ㅎㅎㅎ 

 

-

 

우연히 하게된 캠핑과, 캠핑으로 오게된 멋진 장소와, 집어들었을 뿐인데 많은 공감을 준 책과,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고, 서로가, 그리고 다른 어느 누구와도 색과 결이 다른 일행들이 있어서 즐거웠던 주말이였다. 

 

또 한 번 사진으로 불-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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