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전세 계약 만기 때를 맞춰 집을 알아보니, 적당한 집을 찾기 어려웠다. 집주인이 전세값을 올리겠다 말겠다는 말이 없어 이사를 할 것인가 말것인가부터 결정이 안되었다. 확신이 없는 채 찾아본 집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안들었다.
지금 집은, 위치(서촌에 있지만 한 골목 안에 있어서 시끄럽지 않음), 햇살이 들어와 아침을 깨워주는 침실, 서촌의 지붕들을 볼 수 있는 커다란 거실 창문이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이다. 한 층에 한 가구뿐이라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창 밖으로 서울지방경찰청이 보이고, 경찰서가 한 골목 건너 있다. 처음 이사왔을 때는,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싶었는데 '청와대 근처라서' 안전하다. (혹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좁다. 혼자 살기 딱 좋아, 너무 넓으면 청소하기만 귀찮지, 싶은 마음으로 그럭저럭 살만하다 싶다가도 친구들이 5명 이상 놀러올 수 없을 때(ㅋㅋ), 빨래를 널어서 운신할 공간이 없을 때, 홈트레이닝을 하고 싶을 때, 건조기나 턴테이블 등 새로운 가전이나 가구를 사고 싶을 때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 '서촌 전세'를 검색해보는데, 낡거나 구조가 특이하거나, 너무 안 쪽이면서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주말에는 북촌에 예쁜 빌라 전세가 나왔길래 찾아가보았다. 17평, 2억8천, 방3개, 베란다까지. 리모델링한지 얼마 안된 집은 인테리어를 잘해놓은 덕분인지 넓고 깨끗해보였다. 친구 몇 명에게 링크를 보내보니 반응도 좋다.
집을 보러 갈 수 있을지 물어봤다. 토요일 오전에 시간이 된다고 하였다. 정말 이사가고 싶어지면 어쩌지...이사를 가면 이사 비용이 들 것이고, 그 동안 집이 좁아서 못 산 가구, 가전까지 사고 싶어질 것이다. 돈이 엄청 들 것 같다.
토요일 밤, 설레임과 걱정으로 설레발을 떨었다.
토요일 아침, 전 날 입은 청바지와 셔츠를 툭툭 털어서 다시 입었다. 한 번 더 입고 빨아야지.
연핑크색 코트를 입고 페루에서 산 2만원 짜리 가방에 최근 이동하는 동안 읽고 있는 책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 산책'과 물 한 통을 넣었다.
북촌까지는 걸어갈 생각이였는데, 그랬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은데,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택시를 탔다.
기억에 있는 북촌은 서촌처럼 아기자기하지 않고 식상한 프렌차이즈들이 많았다. 더럽거나 지저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수선하고 북적거리는 느낌이였다. (북촌, 미안)
그런데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길은 이른 아침이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한적했다. 서촌 카페들에 비해 널찍하고 현대적으로 보이는 카페들은 하나하나 들어가보고 싶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지나가는 길은 살짝 흥분되었다.
빌라는 창덕궁 바로 곁에 있었다. 북촌의 길들은 서촌의 길들보다 널찍한 편이였는데, 빌라촌에 들어서니까 급격하게 좁고 가파르고 복잡해졌다. 집 주소를 보고 찾아가려 했는데, 결국은 집 주인이 마중 나와서 따라 들어갔다.
집은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았다. 깨끗하고 아늑한 느낌이였다.
그런데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옆 건물 벽. 벽과 벽 사이에 여지가 없었다. 좁고 가파른 골목 사이로 있는 옆 건물의 벽이 너무 코 앞에 있었다. 맙소사, 내가 언제부터 전망을 봤다고.
사람을 만나면 보통 3초만에 나랑 맞을지 안 맞을지 안다고 하는데, 집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들어섰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렇다. 같이 집을 보러온 일행이 너무 좁지 않냐고 걱정했지만, 귓등으로 들렸다. 금화가 가득한 주머니를 단단하게 여미듯 마음이 정해져버렸다. 그때는 그게 전망 때문이였는지 몰랐는데, 어쩌면 그랬나보다.
이 곳은 아닌가보다, 싶었는데 괜히 고민하는 척 조금 더 기웃거리며 물도 틀어보았다. 잘 봤습니다, 연락드릴게요, 인사를 하고 아쉽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나와 길을 걸었다.
걸어오지 못한 길을 걸어 가기나 해야지. 서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 사이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맞은 편 길에서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선두에 두고 단체로 걸어내려오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롤링핀이 보였다. 프렌차이즈의 장점은 '크게'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항상' 배신당한다. 휑한 가게에서 카푸치노 하나와 빵 하나를 대충 먹고 나왔다.
청와대를 지나 서촌으로 넘어오는 길에,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 공기 사이로 있는 단풍 나무와 경복궁 담벼락이 너무 예뻐 관광객들의 머리를 피해 사진을 찍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조용한 공원이 보였다.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니 무궁화 동산인 것 같다.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책을 읽고 싶었는데 오후 일정이 있어서 다음을 기약했다.
겨울 옷이 없어서 사야지, 사야지하면서 하루하루 미루고 있다. 불편하고 아쉽긴하지만, 하루하루가 또 지나간다. 이렇게 겨울이 지나가면 봄옷을 입으면 될 것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좁아서 아쉽지만 나는 살아가고 있다. 빨래 건조대 너머 손을 뻗어 창문을 열고 닫고,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가끔 등산을 간다. 건조기는 옷이 줄어드는 위험이 있다고 한다. 턴테이블은 음악 좋은 서촌 바에 가서 듣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뜰 때 행복하고, 출근하러 나설 때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이 익숙하고 사랑스럽다. 당분간은 이 곳에 살아야겠다.
해외 전화는 잘 안 받는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뉴욕에 있는 친구를 통해 예약한 피터루거를 어떻게든 찾아갔는데,
너무 피곤해서 고기 3점씩 먹고 포기했다 ㅠ 남은 것은 포장해주어서 다음 날 숙소에서 먹었다.
Whole Foods Market & Left Over
역시나 피곤했던 어느 날 저녁에는 Whole Food에서 Sour 어쩌구 빵과 코코넛 요거트, 즉석에서 갈아 만든 피넛 버터를 사와
에어비앤비 냉장고에 있던 블루베리와 잼과 함께 먹었다. (호스트가 다 먹으라고 함)
발표 준비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먹다 남은 스테이크를 아침으로 구워먹었다.
어쩐지...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가 뒤바뀐 느낌ㅋ
Park Avenue
출장 2일차에는 법인 디너가 있었다. 법인장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이며, 계절마다 메뉴와 인테리어를 바뀐다며 들뜬 목소리로 가게를 소개하였다. 날마다 드레스를 바꿔 입는 법인장님의 favorite restaurant이라니 우리도 잔뜩 기대했는데, 법인 직원들은 법인장님이 오신 이후 계속 그곳만 갔다며 심드렁해했다 ㅋㅋㅋ
직접 경험한 레스토랑은 멋있고 맛있었다. 다만 이때도 출장 중이였고ㅋ 가장 부담스러운 발표 전 날이여서 아쉬웠을 뿐 ㅋ
Sleep No More
드디어 발표까지 마치고! 홀가분한 3일차 저녁.
친구들에게 추천 받은 Sleep No More 공연을 봤다.
뉴욕 출발 전 날 밤을 새고 - 뉴욕 온 이후에 계속 1~2시간씩 쪽잠을 자고 있었다.
발표 전 날에는 특히 더 선잠을 자고, 무척 피곤하였는데
Sleep No More 공연은 배우들을 따라다니며 6층 건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관람해야 하는 공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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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 런던 여행을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루 종일 힘들게 다니면 저녁에 뮤지컬 볼 때 피곤해서 졸 수 있다고, 뮤지컬을 보기로 예정된 날에는 낮에 쉬엄 쉬엄 다니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체력을 과신한 나는 아침 일찍 저녁 시간에 공연하는 빌리엘리어트를 예매한 후 런던의 주요 관광지를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날은 비바람까지 불어 공연장에 도착했을 때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조금 노곤한 정도이고 여전히 괜찮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주인공 남자아이가 발레를 추기 시작했을 때, 내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다. 공연장의 좌석들은 촘촘하고 가파르고, 등받이가 낮았다. 결국 뒷사람의 무릎 위로 머리를 기댄 채 깊이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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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Sleep No More 공연은 몸을 계속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정신은 몽롱할지언정, 잠이 들 수는 없었다.
신선하고 충격적인 장면들 덕에 정신이 번쩍번쩍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잠시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곳이 있었고, 그 곳에 앉았다가 깊은 잠에 빠졌다 ㅋ
배우가 움직이자 관객들이 우르르 달려 나갔고, 관객들과 함께 달려가던 일행이 섬처럼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고 돌아와서 깨워줬다.
Toro
공연장을 나와 The High Line NYC를 지나,
한참 늦은 시간에 저녁을 먹으러 찾아간 곳은 Tapas bar라고 소개되어있는 Toro라는 곳이였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어리둥절.
클럽처럼 음악이 시끄럽게 틀어져 있었고, 팬시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야광봉을 들고 차고 신나게 돌아다니던 서빙은 어리둥절한 우리를 발견하고는, 오픈 5주년 기념 파티를 하고 있으니 핑거푸드를 (공짜로!) 먹고 가라하였다.
졸리고 피곤하고 배가 고파서 허기라도 채우고 다른 곳을 찾아 갈까 싶어 우선 들어갔다. 처음에는 지나가는 음식을 몇 개 집어 먹었는데, 나중에는 좀비처럼 앉아 있었더니 아예 우리 테이블로 서빙을 해주었다.
그리하여 하몽, 소세지가 든 빵, 버섯 그라탕 등 따듯하고 맛있는 핑거 푸드를 열 그릇 먹었다 ㅋ (핑거는 열 개이니까)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서 음식 공짜로 얻어먹기.... 전무후무한 경험이었다.
Cafe Mogador
마지막 날 아침에는,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추천해준 아침 식사 레스토랑 중 가장 가까우면서 평이 좋은 모로칸 음식점 Mogador에 가서 브런치를 먹었다.
나는 토마토 소스와 수란이 곁드러진 모로칸식 아침식사를 주문하였는데,
뭔가 주문이 잘 못되었는지 처음 나온 접시를 접시 채 도로 갖고 갔다가 새 접시를 다시 내주었다.
그런데 추가 주문한 소세지가 없어서 소세지만 챙겨달라는 의미로 얘기했는데, 또 다시 접시 채 가져가더니 새 접시를 내주었다 ㅠ 아까운 두 접시 ㅠ
아무튼, 인기 많은 음식점답게 신속하고 깔끔하고 맛있었다.
Devocion
뉴욕에 가기 전 적어간 커피 리스트는 라 콜롬브, 블루보틀, Devocion, 그레고리였는데, 그 중 겨우 하나 갔다 ㅠ
그것도 미팅에 늦어서 ㅠ 급히마심 ㅋ
커피도 맛있었지만,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곳.
Shakeshack
워킹 런치로 처음 먹어보는 쉑쉑버거. 맛있었음
퀸즈 지역
마지막 날은 시간을 내어 친구의 친구를 만나서 퀸즈 지역의 맛집 두 군데를 갔는데 이름은 둘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 ㅎ
뉴욕은 출장으로 간 것이기도 하고, 원래 큰 애정이 없는 도시이기도 했지만, 이제와서 보니까 조금 그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피곤하고, 졸립고, 여러가지 이유로 서운한 기분이 드는 도시였지만, 이렇듯 시간이 지나서 좋은 일만 기억할 수 있다면, 그 순간도 좋기만 하면 좋을텐데 ㅎㅎ! 머래 ㅋ
이렇게 뉴욕은 끝! ...은 아니고, 끝내주게 멋진 뉴욕 에어비엔비가 있었는데 다음에...!
안정감을 위해 당장 예약하고 싶었지만, 파비앙 여행사가 한국어를 조금 사용할 뿐 저렴하거나 친절한 것은 아니라고 하여 잠시 보류하였다. 어차피 여행사에서 개별 손님을 모집한 후 다른 여행사에서 모집된 여행객들과 같이 여행하는 시스템이라 프로그램이 특별히 다른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는 베트남 하노이에서도 경험했던 일인데, 엄청나게 고심하여 선택한 여행사에서 한참 대기하여 버스를 탔더니 여러 여행사를 돌며 사람들을 다 모아 한 버스를 태우고 한 가이드와 함께 다니도록 했다.
하여, 일정만 계획하고 현지에서 투어사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2-1-2. 마추픽추+와이나픽추 입장권 예약
마추픽추를 검색하다보니 와이나픽추를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건 또 어디야,싶었는데 다행히 마추픽추 바로 옆이란다.
그런데! 여유있게 눈팅 하고 있는 남미 사랑 오카방에서 마추픽추 9월 말 티켓이 거의 다 매진이라고!!! 계속 보다보면 취소표가 나오겠죠?하는 톡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마추픽추 티켓을 미리 예약하는 구나, 알게되었다.